이동 삭제 역사 ACL 마이클 조던 (r2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독한 놈 마이클 조던 ===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 그 일에 대한 기대를 가져야 한다. >You have to expect things of yourself before you do them. >나는 농구를 시작한 이래 9,000번 이상의 슛을 놓쳤다. 나는 거의 300번의 경기에서 졌다. 나는 26번의 경기를 결정짓는 위닝샷을 놓쳤다. 나는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 >마이클 조던, [[나이키]] 광고에서. >마이클 조던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의 심장을 도려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것이 그의 최고의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의 강함의 비결은) 그의 배짱에, 그의 마음 속에 있다. >You're gonna have to cut Michael Jordan's heart out to beat him. Because, people don't understand that's his greatest talent. It is in his inner gut, it is in his inner heart, >---- >[[조지 칼]] 1992~1998 [[시애틀 슈퍼소닉스]] 감독 >난 그걸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다. >And I took that personally. >----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에서[* 영어에서 "Don't take it personal"하면 "너 개인에게 모욕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니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란 의미이다. 그러나 조던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동기부여할 계기를 찾는 인물답게 스포츠 측면에서 이뤄진 결정(제리 크라우스가 댄 멀리에게 보인 관심, 칼 말론의 MVP수상)이나 언론의 설레발(본인과 드렉슬러의 비교) 등을 개인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동기로 삼았다. 이를 상징하는 발언. 유튜브에 조던이 이런 식으로 빡돈 것들을 모은 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는데, 2022년 9월 기준으로 천만뷰를 넘겼다.[[https://www.youtube.com/watch?v=Ss5Ndz0tn9o&t=2s]] 영미권에선 이 발언이 밈이 되어서 운동선수가 과소평가된 이후 맹활약을 했을 때 조던의 발언과 짤이 나오곤 한다. [[손흥민]] 선수가 2022-23시즌 부진하다가 레스터시티전에서 1년반만에 벤치출장해 13분만에 3골을 넣는 맹활약을 하자 영미권에서는 어김없이 조던의 짤과 함께 이 밈이 튀어나왔다.]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으나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엄청난 노력을 더했다.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루면서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특히, 이런 노력의 바탕에는 그 스스로가 지닌 엄청난 승부 근성과 경쟁심이 있었다. * 유타와의 경기 중 [[존 스탁턴]]을 넘어 덩크를 꽂아 넣자, 관객이[* 아직까지도 그 관객의 정체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소문에 따르면 유타 재즈 구단주였다고 하는데, [[칼 말론]]의 [[https://www.youtube.com/watch?v=awffXgr1Yic|증언]]에서도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유타 재즈 구단주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한다. 구단주 래리 밀러는 말론이 입단하던 1985년에 구단주가 되었고, 말론과도 당연히 잘 알던 사이였는데 저렇게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표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래리 밀러설은 샘 스미스가 그 유명한 Jordan Rules란 책에서 제기한 설인데, 스미스가 시카고 트리뷴에서 불스를 오랫동안 담당한 저명한 조던 전문가이긴 하지만 해당 경기는 정규 시즌, 게다가 유타 원정인데다 1987년 당시 유타는 그냥 중위권 팀인지가 이 경기에 동행했는지도 의문이다. 이 시즌에 전 경기 출장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었을게 확실한 말론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 "네 덩치에 맞는 놈이랑 싸워라, 비겁한 XX야!" 하자 바로 그 다음 공격에서 유타의 센터 데멜빈 터핀(211cm) 위로 덩크를 꽂아 넣고 관객 앞으로 가서 [[https://youtu.be/rO0nB7_bVIY?t=168|"이 정도 덩치면 되나? (Is that big enough?)"]] 한 적이 있다. *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가드 제럴드 윌킨스가 경기 전에 "누구도 조던을 막을 수는 없지만, 내가 그나마 좀 잘 막았다." 라고 인터뷰한 것에 대해 43득점을 퍼부으며 친히 화답한 적이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g3qMJCS4Xck]|He can't guard me!]][* 윌킨스는 레전드 [[도미니크 윌킨스]]의 친동생으로, 형과 마찬가지로 운동 능력이 매우 뛰어나 조던을 상대적으로 잘 막는 선수이긴 했다. 그는 1급 수비수까진 아니었지만 당시 조던은 너무나 빠르고 강한 선수라 일단 그의 운동 능력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선수여야 매치업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좋은 외곽 수비수는 크레익 일로였지만 조던을 막는 게 상성이 좋았던 선수는 1998-89 시즌까지 클리블랜드에서 뛴, 운동능력과 사이즈가 되고 팔이 긴 론 하퍼였다. 클리블랜드는 전 시즌에 57승을 거두고도 조던을 못 막아 불스에 석패했기 때문에 전 시즌까지 뉴욕에서 뛰던 윌킨스를 조던을 막으란 특명을 주고 영입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Jordan stopper"란 수식어까지 붙었을 정도. 물론 윌킨스고 하퍼고 조던에게 "덜 털렸다" 수준이지 잘 막진 못했다. 하퍼는 말 한 번 잘못 했다가 플레이오프에서 한 경기 55점을 얻어맞을 정도.] [youtube(Jw0yxoXvF8k)] * 1994-95 시즌, [[멤피스 그리즐리스|밴쿠버 그리즐리스]]와의 경기에서 그리즐리스가 4쿼터 시작 후 11:2로 앞서나가자, 그리즐리스 선수 데릭 마틴(Derrick Martin)이 마이클 조던에게 “우리가 오늘 널 박살낼 거라고 했지?(I told you that we’re gonna beat you tonight.)”라며 조롱했다. 이 말을 듣고 빡친 조던은 4쿼터 6분동안 19득점을 꽂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는데, 위의 영상 3분 50초쯤 보면 경기 중 덩크를 성공시키고 밴쿠버 벤치로 가서 "입 닥쳐, 이 X만한 개자식아(Shut up, you little bitch)."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 1988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도중 훗날 불스에서 재회했으며, 절친한 사이였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가드 론 하퍼가 "그(조던)는 나를 상대론 50점을 넣은 적이 없다"며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자 다음 경기인 2차전에서 하퍼를 상대로 무려 55점을 퍼붓기도 했다.[* [[http://cafe.daum.net/ilovenba/7n/245200]] 영어 원문기사: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1988-05-01/sports/8803130519_1_bulls-domination-craig-ehlo-solitary-confinement]] 하퍼로선 좀 억울할 만한 것이, 해당 멘트는 기자들과 얘기하다가 자연스레 나온 말일 뿐이었고 정작 하퍼와 조던은 바로 전 주에 같이 식사를 할 정도였기에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조던의 거의 편집광적인 승부욕의 피해자. 여담이지만 하퍼는 성격이 좋기로 유명한 인물이라 시카고 시절에도 조던을 포함해 다른 팀원, 관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런 하퍼의 리더십, 원만한 성격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대한 높은 이해도 때문에 필 잭슨이 레이커스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 은퇴하려던 하퍼를 만류하고 자기 팀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 그 유명한 [[http://www.youtube.com/watch?v=M_UtPNmcDJs|눈 감고 자유투 시전도 있다.]] 해당 경기는 [[덴버 너기츠]]와의 경기였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덴버 너기츠의 센터 [[디켐베 무톰보]]가 조던을 향해, "아무리 당신이라도 눈 감고 던지지는 못할 걸?" 이라고 도발하자 "엉, 그래?"라고 해맑게 웃으면서 되갚아준 것이다. 그 후 조던이 툭 던진 것이 그 유명한 "[[어서 와|Welcome to the NBA]]".[* [[서태웅]]이 풍전전에서 한 쪽을 다치자 두 눈 감고 던진 장면은 이 부분을 참조했다.] 무톰보 신인 시절은 1991-92 시즌이고, 전국대회 연재는 1996년도 이다. 이 대사는 이후에 전세계적인 밈이 되었는데, 회사, 지역, 사회, 학교등 전세계 어디던지 그 집단의 초보자들이 그 집단안에서는 흔한 내용을 물어볼때 대답으로 많이 쓰인다. 훗날 방한한 무톰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먼저 도발한 것은 조던 쪽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톰보의 시카고와의 첫 대결에서 조던이 무톰보에게 그가 슛을 한 번이라도 성공시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도발하였고, 무톰보가 골밑 슛 하나를 성공시킨 뒤 조던에게 눈 감고 자유투를 한 번 던져보라고 받아쳤던 것이라고 한다.[[https://youtu.be/Y9VSolr0SFI|5분 50초부터]]] * 그 외에도 무톰보와의 일화로는 1997 올스타전 직전에 경비를 준비하던 날 라커룸에서 무톰보가 조던 면전에서 "마이클은 내 앞에서 덩크를 성공시킨 적이 없다."고 도발한 일이 있었다. 조던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가 "최근에는 자네 위에 덩크를 한 적이 없지, 그건 인정해"라고 했으나[* 조던은 1993년에 은퇴하고 1995년에 복귀한 이후 운동능력이 예전에 비해 약간 떨어지고, 특히 스피드가 그때만 못했는지라 은퇴 전에 비해 돌파 비중이 많이 줄었고 캐치앤 슛이나 포스트업 페이더웨이의 비중이 늘었다.] 무톰보는 지지 않고 "그럼 스카티한테 물어보든가"라며 조던의 속을 긁어 놨고, 조던은 이를 기억해두고 있다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불스와 호크스가 맞붙었을 때 5차전 홈경기에서 무톰보에게 [[https://youtu.be/NlwUFA5Sric|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성공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평소 무톰보가 즐겨하던 [[역관광|까딱까닥 세레머니를 역으로 먹이는 등]] 쪼잔함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 1997년 당시 시애틀 감독인 [[조지 칼]]이 조던에게 "나이 먹고 이젠 그냥 평범한 점프 슈터네!" 했더니 [[https://youtu.be/TuryGoKXT-Q|다음 경기에서 드라이브인 하나 없이 점퍼 하나로 40점 이상 박아버린적이 있다.]] 특히 1쿼터 막판의 하프코트 버저 비터 샷은 그야말로 압권.[* 링크 영상의 2분 36초부터.] 이 에피소드는 구전되어 오면서 몇몇 부분 과장된 부분이 있는데, 일단 조지 칼의 발언 원문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You've got Michael out there looking like he could get hurt. He looks like he's protecting himself more than he has in the past. 조던이 과거에 비해 부상을 경계한다는 뜻인데 안좋게 받아들이면 몸 사리네 정도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다만 어떻게 들어도 평범한 점프 슈터라고 이야기 했다는 건 왜곡이다.[* [[https://www.nytimes.com/1997/02/03/sports/nettled-jordan-stings-the-sonics.html]]하지만 경기 후 기사를 보았을 때, 동 시기의 사람들, 그리고 조단 본인은 조지 칼의 발언을 "나이 먹고 부상이 두려워서 돌파보다는 점프 슛을 많이한다"라고 인식했으며, 이에 조던 본인이 불타올랐다고 생각했다. 조지 칼 본인도 "내가 그런 말을 해서 조던이 불타올랐다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난 그저 그가 점프 슛을 너무 많이 한다는 뜻으로 말했다"고 응답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조던은 "코트 어디든 난 두렵지 않다. 감독들이 나를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그런 발언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계획이라면 말려들지 않을 거다. 돌파를 더 하게 만들고 싶다면, 더블 팀, 트리플 팀을 하는 것보다 길을 열어주는 게 나을거다" 라고 응답했다. 애초에 몸을 사린다는 것 자체가 피지컬한 플레이를 덜 한다는 뜻이다. 빅맨의 경우 대표적으로 리바운드나 수비에서 적극성이 사라지는 것을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허슬플레이도 있지만 조던같은 퍼리미터 선수들은 가장 대표적으로 돌파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던처럼 역대급 돌파력으로 유명한 선수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건 "몸을 사리는 것 같다=예전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돌파 등)을 안 하네"라고 받아들여질 여지가 충분한 것. 실제로 조던은 2차 3연패 당시 돌파의 비중이 1차 때 비해 확실히 줄었으며, 3점 라인 안쪽에서는 슈팅력이 여전히 정교했음에도 야투율이 떨어진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물론 칼은 감독으로서 당시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무기였던 조던에 대한 분석멘트에 불과했지만, 조던의 성격상 이런 평범한 말조차 동기부여로 삼는 인물이라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를 볼 때, 조던 본인은 해당 경기에서 돌파를 자제하고 점프 슛으로 이겨주마! 라는 의식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해당 경기 조던의 결과는 19-28, 45득점인데, 19번의 득점 시도 중에 3번이 돌파, 그나마도 두 번은 포스트업에서의 스핀무브 돌파, 하나는 컷인이었다. 즉 처음에는 포스트업 페이더웨이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파일:MJ_George_Karl_Game_Chart.jpg|width=400]] || || 해당 경기의 슛차트 || 누가봐도 자유투 라인으로의 돌파를 자제하고 대놓고 점프 슛만 노리고 있다. 위의 인터뷰를 포함해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조던은 조지 칼의 발언을 들은 후, 의식적으로 돌파를 자제했고, 기자를 포함한 당시 관련자들도 전부 그렇게 생각을 했으며 실제로 점퍼로만 39점을 박아버렸다. 따라서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으나, 이 일화의 위아래로 줄줄이 적혀 있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조던은 역대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이런 에피소드가 많다.[* 애초에 아무리 뛰어나도 NBA무대에서 저런 식으로 한 선수가 스스로 제약을 두고 맘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유명해진 래리 버드의 "왼손만 써서 득점하겠다" 경기에서도, 중장거리 점프 슛은 오른손으로 쐈으며, 전체적으론 오른손으로 득점한게 좀 더 많았다. 조던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비수들이 호구도 아니고, 특히 시애틀처럼 뛰어난 팀을 상대로 주옵션을 아예 봉인하고 경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저런 식으로 일단 점퍼만 노골적으로 노리는 식으로 경기하는 것만 해도 상식 밖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 알론조 모닝에게 1992-93 시즌 초반 슛을 블록 당하고서 그걸 꼭 기억하고 있다가 [[https://youtu.be/AjnddAMQ9w0|그 다음 경기에서 모닝에게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2방 연속으로 꽂아넣고 미친 듯이 포효하기도 했다.]] 참고로 저 경기에서 조던은 52득점을 기록했다. 미디어가 괜히 포장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실제로 본인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 장면의 의의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일명 조던 리벤지 플레이인데 [[패트릭 유잉]]같은 선수들에게도 블록을 당하면 꼭 그 경기에서 블록을 하는 복수의 칼날을 항상 품고 있었다. * 로드맨 관련해서도 일화가 있는데, 1990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 초반에 로드맨이 조던의 레이업을 블록해버리자, [[https://www.youtube.com/watch?v=GCNK0Nntvl8|이를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로드맨의 슛을 세 번이나 블록해버리기도 했다.]] 로드맨은 조던의 수비매치업 상대도 아니었다는 것, 이 경기에서 조던이 기록한 블록은 이 세개가 전부였다는 걸 보면 대놓고 저격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듀마스로 조던을 주로 막았지만 불스가 조던까지 가드 세 명을 내세우는 스몰라인업을 할 때는 로드맨으로 조던을 막았다. 로드맨이 블록이 이 때 나온 것. 그러나 조던은 상황에 따라 아이제아 토마스와 매치업될 때도 있었지만 조 듀마스를 주로 막았다.] * 1996-97 시즌 뉴욕 닉스의 감독 제프 밴 건디는 불스와의 경기 전 한 인터뷰에서 '조던이 의도적으로 다른 선수들과 친분을 쌓고 경기에서는 그 점을 역이용하여 손쉽게 플레이를 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점은, 많은 선수들이 조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NBA 선수라면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조던이 경쟁심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만큼 다른 선수들도 조던을 상대할 때 그에 못지 않는 경쟁심을 가져야 한다.' 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뉴욕 닉스는 NBA 전체 팀 수비 1위팀의 면목을 자랑하고 있었고 불스의 데니스 로드맨과 론 하퍼는 징계와 부상으로 결장했다. 게다가 스타팅 라인업의 랜디 브라운, 제이슨 캐피는 평범한 실력의 벤치멤버들[* 둘은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둘 다 NBA에서 10년 가까이, 혹 10년 이상 뛰었으며 특히 랜디 브라운은 불스 가드 중 (조던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라서 수비에서 은근 보탬이 됐다. 물론 나머지 능력이 떨어져서 출전시간은 별로 못 받았지만. 둘 다 지극히 평범한 벤치멤버지만 G 리그급은 너무 나간 것이었다.] 결과는 88-87 불스의 승리. 조던은 친히 뉴욕에게 51득점, 4어시스트, 2스틸을 퍼부어 주셨다. 게다가 덤으로 매치업 상대 앨런 휴스턴에게는 필드골 5-18, 성공률 27%라는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게 수비해 주셨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m3AhOKI9s|Michael Jordan. Jeff van Gundy Game.]] 영상에서 51점째를 기록하는 페이드 점퍼를 성공하고서 제프 밴 건디에게 포효하는 부분은 화룡점정. 경기 후 인터뷰에서 조던은 '나는 오늘 밤 어떤 친구도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밴 건디의 해당 코멘트는 억지인 것이, 조던의 친구들은 한 번도 그를 슬슬 대한 적이 없다. 조던을 가장 괴롭힌 것은 디트로이트지만, 1차 3연패 기간에 그를 가장 육체적으로 몰아붙힌 시리즈, 그가 가장 심하게 부진했던 시리즈가 바로 뉴욕을 상대한 1992년 플레이오프 2라운드, 그리고 1993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이다. 조던의 절친들인 패트릭 유잉과 찰스 오클리가 엄청나게 하드 파울을 해대는 바람에 그는 골밑 돌파를 거의 할 수가 없었던 것. 오클리는 조던을 내동댕이치거나 유잉은 돌파하는 조던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조던이 덩크를 하는데 유잉이 뒤에서 밀자(다행히 착지를 잘했지만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었다) 조던이 화가 끝까지 나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유잉에게 다가간 적이 있었다. 스스로의 회고로 "한 번은 시리즈 도중 싸울 뻔했죠(At one point in that series, I was ready to go to blows with him)"라고 한 시점. 조던은 NBA에서 친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당시는 이런 친분과 상관없이 빡세게 농구했다. 또 다른 예가 붙을 때마다 승부욕을 불태우며 트래시 토킹하며 치열하게 맞붙은 찰스 바클리와 조던(바클리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저건 파울 맞아요! 저 놈이 마이클 조던이건 아니건요!"라고 빈정거렸다가 테크니컬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조지타운 선후배인 유잉과 [[알론조 모닝]]이 있다. 이들은 유잉이 모닝에게 신장 하나를 떼어주겠다고 검사를 받을 정도로 절친했는데, 유잉의 표현의 따르면 자신들은 형제나 다름없지만 코트에선 서로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때로 끝난 게 아니라 은퇴하고 나서도 잊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명예의 전당 입회연설때 제프 밴 건디의 실명을 거론하며 자신은 그저 친구들과 밥한끼 먹으려 했을 뿐인데 그것도 못했고 어쨌든 동기부여가 되었다며 콕 집어 언급했다.] * 하루는 워싱턴과 홈에서 만났는데,[* 1993년 3월 19일 경기] 당시 3핏을 향하던 조던의 시카고가 리그 최약체 꼴등 워싱턴과 경기한 날이다. 이 날은 시카고의 손쉬운 승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측했지만, 당시 워싱턴의 슈팅 가드였던 라브래드포드 스미스한테 조던이 역으로 당하면서 겨우겨우 시카고가 승리를 따냈다.[* 당시 스미스는 경기당 평균 9득점 하는 별 볼일 없는 슛가였지만 이날 조던의 매치업으로 나와서 15/20개의 2점 야투를 성공시켜버리며 37점으로 자신의 커리어하이 기록을 쓴다. 조던은 이날 9/27로 25득점을 기록했다.] 조던은 정말 모르던 듣보잡에게 털려버린게 너무나도 화가났고 설상가상으로 스미스는 조던에게 "Good game." 이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열이 정말로 머리 끝까지 뻗친 조던은 이 일을 동료들에게 말하고, 마침 다음 경기가 워싱턴과의 연전이었기 때문에 전날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워싱턴 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후 열린 워싱턴과의 경기에선 전반전에만 36득점을 넣으며 31분 47득점 대활약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경기 시작전 기자들에게 전반전에 전날 스미스가 넣었던 37득점을 넣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더불어 스미스는 이날 15득점 밖에 못했다고 한다.] 경기 후 조던은 스미스에게 가서 역으로 "I told you, I'll do it."[*번역 "내가 해낼거라고 말했지?"] 라고 멘트까지 꽂으며 복수에 성공했다라면 조던의 흔하디 흔한 복수혈전 1 정도겠지만, 후에 데이비드 알드리지가 스미스에게 왜 조던을 도발했냐고 묻자 스미스는 충격적이게도 "난 그런 도발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고. 이 말인 즉슨 조던은 팀동료를 속이고, 자신에게 혹독하게 굶으면서까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자신에게 배로 투쟁심을 자극시켜 복수를 했다는 것 이다. * 1994-95 시즌 야구에서 복귀한 그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멀어져 가던 시카고 불스를 캐리하여 동부 컨퍼런스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으로 이끈다. 이 시기 조던은 기존의 23번이 아닌 45번 유니폼을 입고서 플레이하였고 2라운드에서 올랜도 매직을 만난다. 해당 시즌의 올랜도 매직은 [[샤킬 오닐]], [[앤퍼니 하더웨이]]에 불스에서 이적한 [[호레이스 그랜트]]를 앞세운 신흥 강호로서 57승 25패의 성적으로 동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차지한 강팀으로 도약한 팀이었다. 그렇게 만난 올랜도 매직을 상대로 종료 20초 전까지 91-90 으로 앞서 있었으나 이 후 조던이 드리블하며 시간을 보내던 찰나에 닉 앤더슨에게 결정적인 스틸을 당하여 1차전 패배에 결정적인 미스를 범한다. 이 후 닉 앤더슨은 "45번 선수는 23번의 폭발적인 득점력이 없다." 라는 발언으로 조던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후 조던은 벌금을 감수하고 23번 유니폼을 입고 나머지 시리즈를 치뤘으나 2승 4패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 [* 닉 앤더슨은 1989 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된 준수한 슈팅 가드였으며 해당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괜찮은 활약으로 팀을 파이널로 이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문제의 파이널 1차전 110-107로 앞서던 종료 5초전 1개만 넣으면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연달아 얻어낸 자유투 4개를 몽땅 실패하는 대삽질. 이후 [[케니 스미스]]에게 3점 슛을 얻어 맞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그리고 연장 종료 직전의 [[하킴 올라주원]]의 팁인으로 1차전을 내준 이후 올랜도 매직은 무기력하게 스윕당하며 우승을 헌납한다. 그리고 닉 앤더슨은 파이널의 역적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후 절치 부심한 조던이 맞이한 1995-96 시즌에 불스는 72승을 달성했고, 조던은 올랜도 매직을 이겨야 하는 팀으로 설정하고 시즌 내내 무자비하게 털어버린다. 정규 시즌 1차전은 패배하나 이후 만난 2, 3, 4차전을 모두 승리하고 그렇게 만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올랜도 매직을 스윕하며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해당 시즌 올랜도 매직은 지난 시즌보다 3승을 더 올린 60승 22패의 성적으로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 수위를 차지한 여전한 강팀이었다. (단, [[호레이스 그랜트]]가 불스와의 1차전 이후 아웃되는 악재가 있긴 했다.) 매치업 상대인 닉 앤더슨 역시 무자비하게 털어주셨는데 닉 앤더슨의 1차전부터 3차전까지의 FG-FGA를 보면 1차전 0-7 2점, 2차전 3-11 9점, 3차전 6-11 14점이었다. 그리고 4차전은 부상으로 아웃. 조던의 그것은 1차전 9-17 21점, 2차전 9-21 35점, 3차전 5-14 17점, 4차전 16-23 45점이었다. 해당 시리즈의 영상을 보면 1-3차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닉 앤더슨을 막는 조던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고 특히 2차전에서는 지난 시즌의 스틸을 잊지 않고 똑같이 닉 앤더슨의 공을 스틸로 갚는 쪼잔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아웃된 닉 앤더슨이 빠진 4차전은 최종 목적인 올랜도 매직을 이기기 위해 득점을 퍼붓는 조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PVG-qEqyk|1차전]], [[https://www.youtube.com/watch?v=vlX4OfGmd60|2차전]], [[https://www.youtube.com/watch?v=KgTdL1OohgA|3차전]], [[https://www.youtube.com/watch?v=wHVwxrYas5Q|4차전]]] 마음만 먹으면 꼭 언젠가 그 플레이를 실현한다는 게 조던 최대 강점이다. 실제 조던이 포인트 가드를 보던 시즌에는(32.5득점, 8리바운드, 8어시스트, 2스틸, 1블록) 모든 부분 초과를 찍었을 정도였다. 만약 당시 어떤 기자, 타구단 관계자가 '시즌 트리플 더블은 조던이라도 무리' 라고 말했다면 이에 반발하듯 시즌 트더를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르브론, 웨스트브룩 유형의 선수들과 달리 조던은 득점력 자체가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본인도 잘 알기에 무리해서 다른 부분 스탯을 올리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던의 1988-89 시즌 당시 트리플 더블이 무서웠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조던은 원래 트리플 더블에 목메는 선수가 아니었다. 조던은 1988-89 시즌 이전까지 통산 트리플 더블이 네 시즌 동안 5번, 이후론 10시즌 동안 8번에 불과했다. 이 시즌에 65경기를 소화한 시점까지 그는 32.6득점 7.6어시스트 7.6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었다. 트리플 더블은 5개. 그러나 언론에서 득점만 뛰어날 뿐, 어시스트와 리바운드가 약하다는 기사를 트리플 더블을 바탕으로 냈다. 조던은 이 기사를 접하자마자 이에 시위하듯이 나머지 16게임 동안 10개의 트리플 더블을 찍었다. 정확히는 7게임 연속 트리플 더블 후 한경기 쉰 후에 3연속 트리플 더블을 달성했다. 말 그대로 원하면 원하는 대로 스탯을 찍은 것이며, 더욱 무서운 건 그 기간 동안 득점은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11경기 중 10개를 하던 (그 중 7개 연속) 기간에는 33.6점 11.4어시스트 10.8리바운드,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가 모두 올랐다. 이로 인해 해당 시즌 조던은 32.5득점, 8어시스트, 8리바운드를 달성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공격과 리바운드 관련 스탯만 본 것이다. 조던이 1987-88 시즌 올해의 수비수상 및 스틸왕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시 그가 리그 최고의 수비수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공격은 관중을 부르고 수비는 승리를 부른다."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되는 이 격언을, 문자 그대로 모두 달성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승부근성과 경쟁심이 너무 지나쳐서 병적일 정도였다는 평까지 듣는다. 심지어 플레이오프 중간중간 쉬는 날에 도박이나 골프, 여타 스포츠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승부 근성을 불태웠다고 한다. 뭐 이렇게 보면 [[도박 중독]]에 가까워 보이고, 이런저런 루머[* 조던이 은퇴하고 야구에 도전한 이유가 조던이 자신이 출전한 경기를 포함해서 NBA 경기에 돈을 걸다가 걸린 걸 조던의 상품성 때문에 징계를 주지 않고 참던 NBA 수뇌부가 폭발한 것이라거나, 심지어 아버지가 살해당해서 늪에서 발견된 것도 도박 빚이 원인이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정도 건이라면 그건 상품성과 무관하게 언젠가 터져버릴 시한폭탄과 같은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대로 안고 가려야 갈 수가 없다. 게다가 버리지 않고 상품성을 보존한답시고 징계 대신 다른 스포츠, 그것도 프로에 도전하게 내버려 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몸이 완전히 망가질지도 모르는데? 일부 농구팬들의 생각과 달리 야구는 어깨와 무릎에 엄청난 무리를 주는 스포츠다. 그나마 조던이라 2년 동안 이런 뻘짓을 하고도 농구하는게 가능했던 것 뿐이다. 실제로는 이건 거의 미친 짓이고, 은퇴 후 몇 년을 딴 짓하다 복귀해서도 여전한 지배력을 보여주며 성공한 사례는 그만이 유일하다.]도 무수히 많았지만 스포츠 도박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덕분에 자기 자신의 본업이나 생활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걸로 보인다. NBA 사무국이 조던의 아버지를 청부살해했다는 이야기까지 떠돌기도 하는데 NBA 사무국이 이 정도 사건을 저지르고 묻어버릴 정도로 파워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NBA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꼴. 참고로 NBA 사무국의 최정점에 있는 총재의 연봉이 800만 달러로, NBA 선수 중에서는 평균(5~600만)보다 약간 많고, 스타팅 멤버급의 선수의 연봉도 되지 못한다. NBA는 구단주들의 돈으로 돌아가는 리그다. 그리고 돈줄을 쥐고 있는 이들이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현대 사회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진리이다. NBA 총재는 리그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구단주들이 뽑은 월급쟁이 사장이지, 결코 절대 권력자가 아니다. 그 외에 "나 오늘 50점 정도 넣을 것 같은데, 자네 아들이 보고 있다면 미안하게 됐어." 실제로 조던은 당대 최고 트래시 토커였던 [[게리 페이튼]]과 버금가는 트래시 토커였다.[* 페이튼이 상대를 인격적으로 도발하는 입발이었다면, 조던은 상대방을 실력으로 무시해서 살짝 비꼬는 입발. 혹자는 우아하다고도 표현했지만 달리 보면, 생각하면 할수록 열받고 짜증나는데, [[팩트폭력|근데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은 못하는]], 사람 환장하게 하는 트래시 토킹의 소유자였다. 물론 조던도 페이튼의 트래시 토크에는 넌더리를 치면서 '그의 아가리에 농구공을 쳐넣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어그로]] 투성이인 인물이지만, 실력이 너무도 아득해서 상대팀 팬들조차도 욕을 퍼붓다가 그가 플레이를 펼치면 넋을 잃고 바라봐야만 했다. 스포츠 일러스트지와의 악연도 유명한데 자기 야구 선수 시절 악평을 했다고 1993년부터 지금까지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 50세 생일날 표지는 허락했지만 인터뷰는 거부했다. 2013년 2월 17일 50세 생일을 맞아서 이런저런 칼럼이 전 세계에서 폭주했는데 아래의 칼럼을 읽어보면 조던의 경쟁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그가 겪고 있는 나름의 애환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조던의 모습을 보고 싶은 팬이라면 추천. [[http://goo.gl/GRmXE|1편]] [[http://goo.gl/4DEAx|2편]] [[http://goo.gl/AjbaX|3편]]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8)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